이제 조금 조용해졌으니 저같이 소심한 사람도 말을 해도 될 기회가 온 듯 하군요. 일단 링크 두 개 걸고 시작합니다.
교양있는 대학생의 환상
교양 논쟁에 대한 몇 가지 문제
어느 사회든지 범사회적으로 사람에게 요구하는 기본적인 지식이 있긴 하죠. 그런걸 보통 일컬어 상식이라고 하는 것 같더라구요. 교양도 분명히 지식이긴 한데, 딱 말만 봐도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보이죠? 그렇다면, 아주 거칠게 말해서 교양은 상식에 비해서는 분명히 잉여적이고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않는 지식의 범주에 들겠지요.
물론 제가 너무 세속적으로 말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제가 여지껏 들어온 교양에 대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는 거의 대부분 <대상을 곱씹어 자기맥락화한 뒤 그것을 보편화시켜 자신의 세계관으로서 제시하고 그것에 삶을 일치시키는 과정>보다는 어떤 특정한 지식들을 지칭하는 것에 가까웠으니까요.
그러면 교양이 과연 일부 사람의 생각처럼 상식보다 우위에 서는 지식이냐고 물으면 전 긍정적인 답을 내어놓기가 어렵네요. 물론 지행합일이 이루어지고 올바른 행동을 뒷받침해주는 지식쯤 되면 지식의 우열이라는 것도 있을 법하지만 사람들이 보통 교양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저런 지식들보다는 좀 더 많은 파편화된 지식을 지칭하는 듯하네요. 그리고 순전히 지식자체만 놓고 본다면 효용성─극단적으로 말해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주냐─같은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한 우열을 가리는 것은 식자들의 잘난 체에 불과하다고 보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위에 링크한 sonnet님의 글에 나오는 표현을 일부만 빌리면 교양이란 '엘리트-유한계급'의 장난감이상의 무언가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죠. 게다가 알고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람을 비대칭적으로 구별한다는 점에서 계급차별의 요소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만 그래도 단순히 이렇게 냉소적으로 깔보기만 하는 것은 온당해 보이지 않네요.
여기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교양있기를 요구받는 사람들, 즉 엘리트-유한계급은 일차적 생산에 종사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즉 밥벌어 먹고 사는 일에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란 말이죠.(사실 그렇지 않다면 많은 시간을 들여서 당장 쓸모도 없어보이는 지식을 공부하기도 쉽지 않죠.) 하지만 직접적 생산은 하지 않으면서도 소비를 하는 행위가 정당성이 있으려면 하다못해 간접적으로라도 사회에 기여해야겠지요.
제대로 된 의미의 교양이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 이와 같은 유한계급의 사회에 대한 간접적인 기여가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할 듯 합니다. 비록 밥과 떡은 만들지 않지만, 노동에서 벗어난 여유가 있기 때문에 수행할 수 있는, 인간 사회가 나아가야할 올바른 방향을 알고 때로는 실천도 하는 뭐 그런 바람직한 인간상 말이죠.
하지만 옛날이 어떠했는지는 사실 잘 모르니 현재만 얘기하자면, 활자로 된 교양의 지식이 정말로 공감할 만한 당위를 제시하는 경우도 드물고, 설령 제시한다 하더라도 구체적이면서도 실현가능하며 설득력까지 있는 경우는 더욱 드문 듯하네요. (음 여기에서 설득력이란, 단순히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게 아니라 독자가 실제로 행동하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하죠. 고립된 지식이 아니라 당위에 있어서는 실제로 드러나는 행동이 중요하다고 보니까요.)
이미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제 생각이 너무 허술한 바가 많아서 더 이상의 망상은 실제와 동떨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한 가지 추측정도를 하는 것을 이 글이 잡담이라는 것을 핑계로 저 스스로를 허락하고 계속 해보도록 하죠.
이 글의 초반부와 sonnet님의 글에 나오는 바와 같이 순전히 유한계급의 유희로서의 교양이라면 그것은 선택가능한 취미일 뿐이지 없다고 개탄할 성질의 것은 전혀 아니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말도록 하죠.
하지만 방금전에 말한 것처럼 인간사회에 필요한 당위를 역설하는 의미에서의 교양이라면, 교양의 수요자가 아니라 생산자들─즉 보통 지성인이라고 불리는 극소수의 엘리트들─에 대해서도 몇 가지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 있군요.
한 명의 인간을 설득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에는, 그 사람을 고집불통이라고 부르면 되죠. 하지만 대규모 집단을 설득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는 좀 다르죠. 하늘이 정해준 절대적 당위 같은 것을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이상은 (종교에서 말하는 계율이나 칸트가 말하는 정언명령조차도 관련없는 사람에게는 헛소리에 불과하죠.) 설득의 책임이라는 것은 설득하는 쪽에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이렇게 순전히 설득이라는 관점으로 얘기를 돌려보면, "이러한 당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너희들에게 문제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설득에 있어서는 최악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한국 교회의 길거리 전도의 성공률을 생각하면 왜 그런지 쉽게 알 수 있겠네요.
물론 제게 어떤 대안이 있다고 이런 소리를 가볍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성인─위에서 말했듯이 전 이 단어를 (잠재적) 교양인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해요─에게 계몽이 일종의 의무라면, 단지 시대나 상황이 안 좋다는 이유로 의무를 방기하는 것은 분명히 그들이 생각하는 당위에 어긋난다고도 볼 수 있겠죠. 게다가 위에서도 말했지만 전 이런 종류의 의무는 긍정적 결과가 있을 때만 성공적으로 행했다고 보니까요. 사실 이런 고민은 해당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풀어나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므로 제가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부적당하네요.
사실 저 자신은 조금 온당하게 봐줘도 교양인과는 거리가 한참 먼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 적은 많은 내용은 완전히 가치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유한계급이 추구해야 할, 윤리적으로도 옳은, 교양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최소한 그 내용을 쉽게 접근 가능하고 설득력 있는 형태로 정제해야할 필요 정도는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링크한 글들에서 드러나는 냉소를 피할 길은 없어보이거든요.
덧. 이 주제에 관련해서 있는 많은 글들이 올라왔지만 두 가지 글만 링크한 이유를 들자면, 내용정리가 잘 되어있으면서도 가독성이 좋아서라는게 대답이 되겠네요. 전 활자의 (보편적) 설득력에서 가독성이 차지하는 비중을 굉장히 높게 보니까요.
또 덧. 제가 이 글에서 분류하여 사용한 교양의 두 분류가 실제로는 분리불가능한 하나의 개념이 가지는 두 가지 속성일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제 시각으로는 분리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따로 썼습니다.